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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반성매매를 이야기하기

〈반〉 전(서울: Tak Gallery, 2017.12.11.-12.17.)에는 “예술로 반성매매 프로젝트 기획전시”라는 노골적인 부제가 붙어있다. 전시 소개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5인의 작가들은 예술이 ‘왜’ 성매매를 이야기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했다”고 전하지만 전시된 작품들을 통해 그들의 고민을 읽기는 쉽지 않다. 아무런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으므로, 이것이 고민의 결과인지 즉각적으로 내린 답인지, 고민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지 애저녁에 끝나버렸는지, 관객으로서는 알기 어렵다.1
전시에 참여한 것은 윤나리, 손상민, 전민주라는 세 명의 작가와 ㈜둘 중 하나(이기성, 이현정)라는 콜렉티브 하나다. 이 중 가장 노골적으로 반성매매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둘 중 하나로, 이들은 anti-STB(Sex Trafficking Buyer)라는 가상의 약물 및 치료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잠재적) ‘성매수충’이라 지칭되는 이들에게서 성매매의 욕망을 씻어내어 주는 제품이다.이들은 “성매매 시장”을 “자본이 혐오와 폭력으로 빚어낸 착취의 장”으로 규정하며 “예술로 새로운 시장을 소환”하고자 한다. 나는 궁금했다. 성매매가 백신을 필요로 하는 오염 물질 같은 것이라면, 그곳에서 성판매자들의 위상은 어떻게 되는 걸까. 성(혹은 성서비스)을 사고파는 것을 막기 위해 판매되는 anti-STB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그 시장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처지에 있을까.
전민주 역시 “성과 권력이라는 성매매의 근본적인 문제”를 말하지만 그의 작업은 사뭇 느낌이 다르다. ‘군산 아메리칸 타운’ 혹은 ‘국제문화마을’이라 불리는 기지촌의 폐허들을 촬영한 그의 작업은 한편으로는 성매매가 모든 것을 황폐화시킨다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황폐화시킨 것이 과연 성매매 자체일까를 궁금하게 만든다. 성매매를 둘러싼 사회적 입장들, 가장 직접적으로는 정책들, 어쩌면 범인은 그것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손상민의 작업 또한 비슷하다. 역시 “‘성매수범’이 성매수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전국 각지의 집결지에서 망원렌즈로 “성매수범의 뒷모습”을 촬영해 편집한 작업을 보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평범한 모습을 하고서, 악마 같은 일에 동참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작업 쯤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 역시 궁금하게 한다. 저 길을 지나는 저들이 악마라면, 저들과 똑같이 생긴 나는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사진이 투사되는 스크린 앞에는 커다란 소파가 놓여 있다. 앉아서 고민하면 좋을 것이다. 거기 앉고서도 단순한 구경꾼으로 남지 않을 방법을 나는 모르지만.
“고민했다”는 말에 가장 걸맞은 것은 윤나리의 작업이다. 기다란 테이블 위에 희끗희끗한 무늬가 그려진 투명한 컵 42개 ― 전국 집결지의 숫자다 ― 가 놓여 있다. 자세히 보면 그려진 것은 글자들이다. 테이블에 앉아서 컵을 가까이 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보아야 겨우 읽을 수 있는 이 문장들은 이론서나 인터뷰집 등에서 가져온 성매매에 관한 말들이다. 다른 작가들이 쓴 것처럼 성매매를 범죄시, 숫제 악마시 하는 문장들도 있고 성판매의 고됨을 토로하는 문장들도 있다. 종일 가서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면 42개의 문장을 모두 읽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내키는 대로 몇 개의 컵을 집어 들고 애써 읽던 관객들은 나머지 모든 컵을 읽는 대신 고민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말을 컵에 새긴다면 어떤 문장이 될지 말이다.
윤나리의 작업은 성매매에 관한 많은 담론들이 실은 신경을 기울여야 읽을 수 있는 것임을, 실은 많이들 발견되지 못하고 소통되지 못한 채 흘러가 버림을 지적한다. ㈜둘 중 하나의 작업은 내게, 그처럼 담론들을 흘려보낸 결과물 ―그러니까 이렇다 할 고민을 하지 않은 데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슈에 대해 ‘예술로’ 말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감각적으로’ ― 특히 전민주는 직접적으로 이 말을 사용한다 ― 무언가를 전달하는 데에 초점을 둔 듯하다. 그러나 생각건대, 그 이상이어야 하지는 않을까. 일상적인 담론에서 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들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 일상을 살아가면서는 고민하지 않게 되는 것들을 고민하게 하는 것, 그런 것들이 예술이 ― 그저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조금은 빗겨나 있는 어떤 것으로서 ― 할 수 있는, 그러므로 해야 하는 일은 아닐까.

  1. 나를 아는 이라면, 내가 성노동론을 지지하기에 이렇게 생각한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성노동론을 지지하는 것은 그것이 성매매 철폐에 이를 수 있는 보다 나은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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