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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울고 있다

2008년의 글. 다시 읽어보지는 않았다.

 

『돈이 울고 있다』

잘 나가는 엘리트 은행원이었던 타카기 마코토는 은행을 그만둔 후 대부업체 해피 서포트에 취직한다. 반년 만에 지점장이 되는 고속 승진이었지만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회수하는 일은 험난하다. 때로는 그 집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서도 가혹하게 빚을 독촉해야 하고, 꼭 돈이 필요한 사람이라도 갚을 능력이 없으면 1엔도 빌려줄 수 없다. 장기 불황으로 일본은 지금 사채업과 등록 대부업이 만연해 있다. 항상 악인으로만 묘사되는 대부업자, 그들의 진심은 과연 어떨까? 일본의 불황이 10년 넘게 지속되면서, 서민들의 가계는 점점 빈곤해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대부업이나 사채업이 성황을 이루어 빚에 허덕이는 서민들도 늘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는 최근의 만화에도 반영된다. 『돈이 울고 있다』는 대부업을 소재로 한 만화. 대부업이란 일반 금융에서는 대출받을 수 없는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준 사채업. 사람들은 흔히 대부업자 하면, 악랄하고 돈만 생각하는 일당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꿈이 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나 빌리는 사람이나 괴롭기는 매한가지. 울며 애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최악의 길로 가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돈이 사람을 울린다. 돈이 울고 있다.

돈이 울고 있다?

위에 인용한 책 소개의 마지막 부분과 같이, 울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다. 울고 있는 것은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을 울리는 것이 바로 돈이다. 쿠니토모 야스유키의 작품인 이 만화책은 대부업에 종사하는 한 정직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인생사의 문제들을 복잡하게 만드는지를 그려 내고 있다. 일본에서는 대부업이 꽤나 성행하여서 이러한 것이 독자들에게 친숙한 소재일지도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은 그리 친숙하지만은 않은 소재일 것이다. 물론 그림체나 대사의 양으로 보아, 가볍게 읽지만은 못할 작품이긴 하지만 만화라는 접근성 높은 매체는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되어 준다. 크게 대중적이지는 않으나 『행복한 시간』,『100억의 사나이』등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고정적인 독자층을 어느 정도 두고 있는 쿠니토모 야스유키의 별명은 ‘자본주의 만화가’. 그가 이런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자본주의 체제와 돈 관계 속에서의 인간관계, 사랑, 가족 해체 등에 대해서 날카롭게 그려낸 작품들을 써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돈이 울고 있다』 역시, 그의 그런 명성을 깎아 먹지 않을 만큼 현실을 제대로 담아 낸 작품일까. 극한의 자본주의 만화가가 그려 낸 자본주의와, 그 세상을 사는 인간의 모습을 한번 읽어 보자.

타카키 마코토

이 책의 주인공 타카키 마코토는 전직 은행원으로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기의 예비 아빠이다. 즉, 그에게는 부양가족이 있고, 가장으로서의 생계유지라는 막중한 의무가 있다. 그가 은행을 그만 두게 된 것은 자신의 부하직원이 저지른 부정사건 때문인데, 그는 그 책임을 대신 지고 직장을 그만 둘 만큼 착하면서도 우직한 사람이다. 비록 엘리트 코스를 밟아 은행원이 되었던 이이기는 하나, 어찌 보면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 인물인 것이다. 아무튼 그는 결국 대학 선배의 주선을 통해 ‘해피 서포트’라는 소비자금융업체에 취직하고, 단기간 내에 지점장이 된다. 그를 천거한 그 선배는 매우 악독하고 냉정한 인물로 부하직원을 자신의 경력을 쌓는 데에 사용하는 부품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며, ‘해피 서포트’라는 회사는 실적이 낮은 지점의 지점장을 본사로 호출해 꿇어 앉혀 놓고 단체로 욕을 하는 ‘반성회’라는 절차를 두고 있는 비인간 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타카키 마코토는 그러한 상사와 회사 방침과는 달리 인간적인 ‘빚쟁이’가 되고자 한다. 돈을 빌리러 오는 이들을 인간적으로 읽어 내려 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돈을 빌려 주고, 진심으로 그 돈이 상대방의 생활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어찌 보면 인간사 중 가장 지저분한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만한 돈 문제에 얽혀 일하는 것을 때로 괴로워하고 때로 비참해 하지만 가족을 생각하며 꿋꿋이 버텨내는 사람이다. 전임 지장점이 써 오던 방식인 강제 회수라거나, 불법적 회수 등의 행위를 전혀 하지 않으며 돈을 빌려 줄 때도 실적을 위해 과도하게 빌려주는, 대출자를 파산으로 끌고 갈 만한 그런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요컨대, 돈 때문에, 가족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빌려 준 돈을 받아 낼 수밖에 없는, 착하디착한 불쌍한 사람인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돈은 해피 서포트에서 소비자들에게로 대출되고, 원금에다 이자를 불려서 다시 해피 서포트에로 상환되는 존재이다. 소비자들에게 대출된 돈은 생계비가 되기도 하고, 사업 자금이 되기도 하며, 혹은 매춘을 위해 쓰이기도 한다. 돈이 소비자에게 대출될 때는 ‘여신’이라는 신용 평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은 온라인으로 소비자의 수입 상태와 은행 대출 관계에서부터 타 대부업체에의 대출 관계까지, 돈과 관련된 공식적인 모든 기록을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지점장의 눈으로 그 사람의 성실성이나 정직성을 가늠하는 일까지, 가능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 부분에서 실패하여 돈을 지나치게 많이 빌려 주면 그것은 손해로 직결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윤을 위해서는 가능한 많이 빌려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한 젊은 여성의 결혼 자금이 회수되기도 하고, 또 가끔은 아이의 장난감 값이 회수되기도 한다. 매월 회수율이 할당량에 0.1%라도 못 미치면 그것은 당장 감봉, 강등, 해고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저 착하게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 냉혹함이 되고 때로 잔인함이 되어, 돈을 빌려 주던 때와는 반대로 한 개인을 수렁에 밀어 넣기도 한다. 돈을 갚지 못해 자살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성매매에 뛰어 드는 이도 있다. 빌린 사람은 빌린 사람대로, 빌려 주는 사람은 빌려 주는 사람대로, 피폐할 대로 피폐해 지고, 차가울 대로 차가워 질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말 그대로 사람의 피를 말리고 사람의 눈물을 말린다.

사람이 울고 있다

하다못해 친구에게 돈을 빌려 줬다가 제때 못 받게 되는 상황도 충분히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 될 수 있다. 그 돈이 급하게 필요한 경우라면 빌려 준 쪽에서는 인정사정없이 차갑고 끈질기게 변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물론 반대로 빌린 쪽에서 갚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쪽은 이쪽대로 안면몰수 하는 수밖에. 이 사회에서 돈은 그러한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문명기 최대의 이기이자 최악의 마물이기도 한 것이다. 돈은 단지 사람이 사용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서 독자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무언가가 된다. 흔히 말하는 자본은 있되 자본가는 없다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돈 스스로의 메커니즘이 알아서 계속 돌아가는 가운데, 개인은 자신의 주체성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업계의 상황도 비슷하다. 물론 마코토의 선배나, 전임 지점장 같은 악한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마코토와 같이 착한 사람들이다. 인정을 이기지 못하고 고객에게 사비를 빌려 주었다가 떼이는 사람도 있고, 착해 보이는 고객의 거짓말에 속아 거액 대출을 해 주었다가 결국 회수하지 못해 퇴직당하는 사람도 있다. 하루에 상환 독촉 전화를 수백 통씩 해야 하고, 상황이 허락한다면 고객의 집에 찾아가서 애원하기라도 해야 하며 으름장을 놓아서라도 받아 내어야만 한다. 그 가운데 해피 서포트의 직원들은 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나쁜 빚쟁이놈’이 되고, 그들 스스로도 자멸감을 느끼게 되곤 한다. 어쩌면 이 대부업계의 현장이 자본주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일 터이다. 상품에 가려지지 않은, 순수한 돈이 오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돈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되며, 사람은 생계와 미래를 위해 그 돈보다 낮은 위치를 점할 수밖에 없는, 재미도 긍지도 느끼지 못하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 뛸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돈 때문에 사람이 울고 있다. 빌린 사람도, 빌려 주는 사람도 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개인의 선함과 악함의 차원이 아니라, 체제와 구조 자체의 문제 속에서 사람이 울고 있다. 살기 위해서는 때로 남을 짓밟아야 하고, 때로 냉혈한이 되어야 하며,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나아가야 한다. 마코토는 말한다. “은행을 그만두고 이곳밖에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것이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요.” 돈의 세상을 살아가는 개개인은 이겨내어야만 한다. 이겨내고 살아남아야만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듯, ‘무한경쟁의 시대’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밀치고 나아가는 것뿐이다. 최고의 엘리트가 되어 경쟁 관계를 뛰어 넘어, 그 경쟁의 관리자가 되지 않는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일의 경쟁을 이어나가는 것뿐이다. ‘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야만 하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대부업계이기 때문에 더욱 그 속에서 자신을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더 이상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마코토의 삶은, 비록 그가 빌려 주는 입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빌리는 사람, 혹은 벌고 쓰는 다른 누구의 것에 빗대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돈이 울고 있다』

쿠니토모 야스유키는 자본주의 만화가라는 별명답게 자본주의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대부업계라는 냉혹한 세계에서, 돈 때문에 자신을 잃지는 않으려 무던히도 애쓰는 한 남자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어느 정도 버릴 수밖에 없는 그 남자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소시민, 서민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자신의 의지를 발현할 수만은 없는 자본주의라는 체제, ‘해피 서포트’라는 회사 체제 안에서 개인은, ‘체제가 요구하는 것을 다 채운다는’ 전제 조건 하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 가족과의 휴가도, 혹은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일도, 할당량을 채우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사람일 수만은 없도록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이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정열과 긍지를 지켜가며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란 흔하지 않다. 괴로움을 이겨내고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마코토는, 한 변호사의 선동으로 고객들이 단체로 과잉 회수 소송을 거는 사건에 직면하게 된다. 고객들은 마코토를 욕하며, 빚쟁이라는 ‘악한 족속’에 대한 심판을 감행한다. 그러나 마코토는 그런 이들을 앞에 두고서, 무릎을 끓으며 이야기한다. 돈을 갚아 주십시오, 라고. 저는 당신에게 그것이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빌려 간 돈은 꼭 갚아 주십시오. 그리고는 항의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반응이 새어 나온다. 그래, 예전에 여기서 빌린 돈 덕분에 난 자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어. 소송을 그만 둬야겠어, 라고. 결국 악한 사람은 없다. 다만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구조만이 존재하는 것일 뿐. 그 구조 속에서 자신을 지켜 내는 일도, 경쟁에서 살아남는 일도 어렵지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빌려 주는 이에게만 초점을 맞춘 탓에, 빌려 간 이들은 개인적인 무능력자, 혹은 방탕한 자 정도로 비치게 되는 부족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돈이 울고 있다』는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얼마나 제약하는지, 사람보다 돈이 얼마나 앞서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돈 때문에 사람을 닦달하고, 돈 때문에 사람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개인의 성품이 아니라 체제 자체에서 기인한다. 자본주의라는 악랄한 그 체제는 마코토를 어쩔 수 없는 ‘나쁜 빚쟁이’로 만들고, 쿠니토모 야스유키를 어쩔 수 없는 ‘돈 잘 버는’ 만화가로 만들며, 나를 어쩔 수 없는 취업 준비생으로 만들고 만다. 그 과정에서 빠져 나가기 위한, 그 구조를 전복시키기 위한 노력까지를 자본주의 만화가에게 요구하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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