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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정범》, 용산이라는 오늘

약간의 불안을 가지고 극장에 들어 갔다. (연분홍치마의 전작을 본 적이 없는 탓일 테다.) 새로운 내용 없이 오세훈이니 김석기니 하는 이들에 대한 욕을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영웅으로 치켜 세우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들 말이다. 쓸데 없는 걱정이었다. 《공동정범》은 누군가를 악마로 만들거나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드는 대신, 살아 남은 자들의 삶을 그림으로써 2009년의 용산을 기억할 것을 ― 그것을 여전한 현재로서 살아낼 것을 촉구한다.
느지막히 눈을 뜨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용산의 농성장에서 경찰의 진압작전 중에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내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다섯 시 경의 일이었다. (그날의 일기를 확인했다.) 아직 추모하러 온 이들보다 경찰의 수가 더 많은 시각이었다. 사람이 모여들고, 헌화를 하고, 저녁에는 행진을 시작했다. 몇 차례 밀고 당긴 끝에 명동까지 도착한 행진 대열은 투석전을 벌였다. 많은 이들이 다쳤다. 행진은 더 이어지지 못했고, 명동성당 앞쯤에서 정리되었다. 2009년 1월 20일이었다.
당시 나는 기자로 일하고 있었으므로 이후에도 용산을 종종 찾았다. 크고 작은 집회들을 취재하기도 했고, 용산에 머물며 연대하는 이들 혹은 용산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이들을 인터뷰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용산 철거민’들에게 말을 건네지 못했다. 1월 20일의 망루 농성에 함께 했던 다른 지역 철거민들에게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겐 자신이 없었다. 그들의 아픔을 받아들일 자신이 말이다.
《공동정범》은 내가 말 걸지 못했던 이들, 그 중에서도 당일 화재의 책임을 지고 징역까지를 살고 온 이들에게 말을 건넨 작업이다. 영화는 2013년 사면되어 일상으로 돌아온 ― “망가진 일상으로 돌아온”이라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 김주환, 김창수, 이충연, 지석준, 천주석 다섯 사람을 인터뷰한다. 인터뷰 속에서 이들은 망루농성의 영웅들이 아니다. 아파하고 미워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김일란, 이혁상 두 감독은 그들이 얼마나 큰 결의를 안고 농성에 참여했는지, 징역살이 이후로도 얼마나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지를 그리지 않는다. 어쩌면 멋모르고 들어갔던 농성(용산4구역대책위 소속이 아닌 이들은 당일까지도 농성 계획을 몰랐다고 한다)이 그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그 과정에서 검경의 무력진압과 부실수사는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추적한다. 쉼 없이 투쟁하는 이들이 아니라, 술과 한탄으로 시간을 보냈던 이들을 인터뷰한다.
검찰과 법원은 ‘용산 참사’를 철거민들의 화염병으로 인한 화재로 결론 내렸다. 당시 진압 작전 책임자였던 김석기는 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진실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고, 그것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들에게 ‘나 때문에 그들이 죽은 것일까’ 하는 죄책감만을 안겨 두고 있다. 흔히 말하듯, 알지 못하면 애도할 수 없다. 가족과 동료를 잃은 살아 남은 자들은 여전히 애도하지 못한 채, 자신의 상처만을 안고서 살아가고 있다.
《공동정범》은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파헤치는 영화는 아니다. 음모론이 되어버리기 쉬운 그 길 대신, 이 영화는 진상규명이 왜 여전히 필요한지를 말하는 쪽을 택한다. 그러면서도 오세훈이나 김석기, 혹은 이명박을 처벌하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쉬운 말 대신, 아직 2009년을 살고 있는 개인들의 삶을 위해(서라도) 진실이 밝혀져야 함을 말한다. 그들이 서로와, 그리고 자신과 화해할 수 있기 위해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헌화하고 향을 피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진상규명이 필요함을 영화는 말한다.
《공동정범》이 비추는 용산 참사는 바로, 그리고 새로 기억되어야 할 역사로서의 과거가 아니다. 적어도 영상에 출연하는 다섯 명의 마음 속에서, 그리고 다섯 명의 꿈 속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오늘이다. 그 오늘을 바로 잡기 위해, 그들이 내일로 나아갈 수 있기 위해, 우리는 용산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용산을 파헤쳐야 한다.
영화를 시사회에서 본 것은 잘 한 일이었다. 사람 몇 없는 개봉관에서 보았다면 슬펐을 것이다. 같이 눈물 흘리는 이들이 없었다면, 그리고 때로 같이 웃음 짓는 이들이 없었다면, 조금 더 외로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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