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에서 내 친구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 (사이드 알살룰, 2026)

원문: Said Alsaloul, “ The last thing I can give to my friend in Gaza,” We Are Not Numbers, 2026.02.22.

이브라힘의 죄는 표적 가까이 서 있었던 것이었고, 그의 죽음은 ‘부수적 피해’라는 말로 표백되었다.


필자와 함께 있는 이브라힘 무니피Ibrahim Munifi(오른쪽).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데이르 알-발라 해변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이드 알살룰 제공.

그 어떤 말보다도 시끄러운 침묵이 있다. 바로 친구의 목소리 대신 들려오는 침묵이다. 그 침묵에 가슴이 미어진다. 혼자 생각에 잠길 때면 더더욱.

이브라힘 무니피와 사이가 멀어진 것도, 서로를 저버린 것도 아니다. 우리의 우정을 끊어버린 것은 그의 목숨을 앗아가고는 “불가피한 부수적 피해”였다는 말로 정당화된 이스라엘의 공습이었다. 2024년 6월에 우리의 우정이, 그리고 동업을 약속했던 우리의 미래가 지워져버렸다.

나는 사이드 알살룰, 스물여섯 살 영어 교사다. 내가 영어에 열정을 품게 된 것은 2016년 중학생 시절에 이브라힘을 만나면서였다. 이브라힘이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영어 선생님이 어려운 문법 문제를 낸 날이었다. “어떨 때 ‘I’ 뒤에 ‘were’를 쓰죠?” 이브라힘은 주저 없이 손을 들고 말했다.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할 때요.”

그는 영어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했다. 하지만 그냥 학생이 아니라, 카리스마 넘쳤던 우리 선생님의 친구에 가까웠다.

내가 그에게 다가간 것은 그가 내가 늘 바랐던 것 ― 유창한 영어 실력 ― 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같은 책상을 쓰며 영어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서로 새로운 단어나 숙어를 알려주었다. 대학에 갈 때까지 줄곧 서로의 영어 사랑에 기름을 부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둘 다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나는 이슬람대학교, 이브라힘은 알-아자르대학교였다. 두 대학 모두 가자시에 있는데,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막상 내게 영문학은 꽤 어려웠고 이브라힘은 내게 도움이 필요하단 걸 알았다. 우리는 종종 서로의 수업을 청강했다 ― 중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같은 책상에 나란히 앉았다. 그가 있는 덕에 내 실력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영어가 유창했을 뿐만 아니라 아랍어도 정말 유려했다. 시나 고사를 술술 낭독했고, 듣고 있으면 참 좋았다.

좌절된 우리의 사업 계획

우리 둘 다 2022년에 졸업했고, 가자시에 영어교육센터를 열자고 다짐했다. 수입원이기도 했지만 영어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추구하는 일이라는 점이 더 중요했다. 해변 카페에서 만나 사업 계획을 논의하곤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세웠을 무렵 시작된 전쟁이 모든 것을 산산조각 냈다. “전쟁이 끝나면” 일을 재개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전쟁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길게 이어졌다. 가자의 상황이 참혹해지고 기근이 심해지면서 우리는 꿈이 아니라 생존에 집중하게 되었다.

전쟁은 내 친구, 미래의 선생님을 전자화폐 트레이더로, 나를 사람들의 고통을 기록하는 작가로 만들었다. 그것이 ― 내 사람들의 견딜 수 없는 고난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카타르시스를 주는 일이기보다는 의무에 가까웠다. 우리 둘 다 기근을 견디는 가족들을 위해 완충막 역할을 하려고 애썼다.

이브라힘을 마지막으로 만난 날에는 우리 둘 다 배를 곯은 채로도 운명이라면 어떻게든 실현될 거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믿음을 붙들고 있었다. 겨우 변변찮은 배식이나 얻으려고 죽음 직전을 살아가는 힘 없는 이들에게 강도짓을 하는 이들 혹은 구호품 트럭을 터는 이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았다.

이브라힘의 관대함은 2024년 라마단에 빛을 발했다. 그는 천막촌에 사는 가족들을 위해 기부를 하자며 현금으로 거의 1,000 달러를 모아 왔다. 나도 100달러를 보탰다. 우리의 임무는 이프타르[1] 시간이 되기 전에 가장 힘든 가족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숨막히는 현금난이 가자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시장에서는 전자화폐로 결재할 수 있었지만 40%라는 어마어마한 수수료가 붙었다. 우리가 모은 현금은 귀하고도 절실한 것이었다.

우리는 천막촌을 돌며 가장 궁핍한 이들을 찾았다녔다. 조심해야 했다. 들키면 금세 사람들이 떼로 몰려올 터였다. 결국은 우리 모두 궁핍했으니까.

이브라힘 덕에 그날 밤에 수십 가구가 행복하게 금식을 마칠 수 있었다.

‘내 친구잖아!’

2025년 6월 16일, 데이르 알-발라 텔레그램 채널을 훑는데 한 이름이 시선을 붙잡았다. “아부 아리프 거리에서 세 명 순교 … 이브라힘 무스타파 무니피.”

한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화면을 껐다. “내 친구잖아!” 어떻게든 숨을 진정시키려 애쓰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이브라힘이었어.”

집으로 달려가 깨끗한 바지와 티셔츠를 꺼냈다. 옷을 갈아입으며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어 이브라힘의 번호를 눌렀다. 그가 전화를 받기를 바랐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이브라힘은 언제든 한번에 전화를 받았다. 지금껏 다시 걸어야 한 적이 없었다.

결국 눈물이 된 불안감

알-마가지에서 그의 집이 있는 데이르 알-발라까지 차로 20분 거리를 가면서 다시 한 번 그의 번호를 눌렀다. 이번에는 전화가 연결됐다.

“앗살람 알라이쿰! 이브라힘?” 문득 부질없는 희망에 휩싸이며 말을 건넸다.

침묵.

“이브라힘!” 이번에는 외쳤다.

침묵이 숨 죽인 흐느낌으로 변했다.

“네 친구가 세상을 떠났어.” 이브라힘의 어머니가 울먹였다. “이브라힘이 죽었단다. 걔를 위해 기도해 다오.”

가슴이 쿵쾅거렸다. 일순 얼어붙었다. 그가 없는 내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비탄에 빠진 어머니를 다독이려 애썼다. “알라께서 그의 영혼에 자비를 베푸시기를. 분명 좋은 곳에 갔을 거예요, 관대하고 좋은 사람이었잖아요. 이브라힘 지금은 어디에 있나요?” 어머니가 괴로워 하면 이브라힘이 슬퍼할 것을 알았으므로 내가 그 대신 어머니를 달래야 했다. 적어도 마지막으로나마.

“알-아크사 병원 영안실에 있어.”

영안실에는 시신낭 다섯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 중 하나에 이브라힘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내가 지퍼를 열려 하자 구급대원이 “열지 마세요!” 하고 외쳤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오후에 군중 위로 미사일이 떨어졌고 세 사람이 즉사했다고 알려주었다. 이브라힘의 죄는 표적 가까이 서 있었던 것이었고, 그의 죽음은 “부수적 피해”라는 말로 표백되었다.

이브라힘에 관해 쓰는 것이 내가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다. 이것이 마지막 연결고리, 나를 그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다.


1 역주 ― 라마단 기간에 일과 중의 단식을 마무리하며 저녁을 먹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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