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열린 라파, 무색한 안도 (사라 아와드, 2026)

원문: Sara Awad, “As Rafah Reopens, Relief is Tainted by Loss,” Palestine Deep Dive, 2026.02.18.

라파 국경이 제한적으로 다시 열렸다는 소식이 언론을 가득 채웠지만 현지의 현실은 여전히 위태롭고 불확실하다.

라파 검문소 사진. 통과 중이거나 대기 중인 사람은 없고, 직원인 듯한 사람만 몇 명 보인다.

같은 날, 서로 이보다 더 멀 수는 없을 것 같은 기사 두 개를 접했다. 하나는 이튿날이면 라파 국경이 열릴 거라는 소식이었다. 몇 시간 뒤에는 또 한 번의 휴전 협정 위반으로 열두 명이 살해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아놓고 보면 익숙한 사실이 드러난다.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안도감 비슷한 거라도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이미 대가를 치른 뒤의 일이라는.

2월 2일에는 이탈리아의 어느 평화로운 곳에서 아침을 맞았다. 그래도 늘 하듯이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가자 소식을 확인했다. 도무지 정리가 안 되는 기사 두 개를 한참 바라보았다. 어떤 기분이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당혹감에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이런 일들이 동시에 있을 수 있느냐고, 어떻게 상황이 희망적인 동시에 이렇게 끔찍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여덟 가족 중 한 명이 조용이 답했다. “사라, 그게 정상이야.” 슬프게도 그렇다. 우리에게 좋아 보일 법한 일들마저도 이스라엘이 뒤틀어버리는 것이 정상이 되어버렸다. 두 해의 인종학살로는 충분치 않다는 듯, 우리가 “자유”를 조금이라도 맛보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듯.

나는 이제 가자에 살지 않지만 ― 이탈리아로 떠나왔다 ― 여전히 거기 있는 것처럼 빼놓지 않고 모든 소식을 챙긴다. 가족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스물한 해동안 당신을 기른 곳이 여전히 심장을 붙들고 있다면 거리는 아무 의미도 없다. 모든 기사가 무겁게 다가온다. 나는 안전하다고는 해도, 나는 일단은 자유롭다고 해도, 기사들은 몸은 떠날 수 있어도 영혼은 그 자리에 남는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라파 국경이 다시 열린다”는 기사 제목이 소셜미디어를 가득 채웠다. 가자 밖에 있는 이들은 그걸 읽고 안도했겠지만 팔레스타인인들만은 기사에 다 담기지 않은 이야기들을, 견딜 수 없는 상황들을, 그런 말들 뒤에 숨은 제약들을 알았다.

귀환

가자 감옥문들이 ― 아마도 양방향으로 ― 다시 열린 첫날이 조금 전에 끝났다. 지금 이탈리아는 새벽 두 시 이십 분, 가자는 그보다 한 시간 빠르다. 나는 여전히 내 가족과 가자의 더 나은 미래를 찾아 뉴스만 보고 있다. 치료를 받기 위해 가자를 나왔던 한 여성의 영상을 보았다.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치료를 받은 다른 열네 명과 함께였다. 그녀는 “가자를 떠나지 마세요, 가자에 있으세요” 하고 울부짖었다. 이스라엘은 쉰 명의 귀환을 허가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겨우 열네 명만 들여보냈다. 이곳에서 약속은 너무도 쉽게 깨진다. 이스라엘의 약속이 현실이 되는 일은 너무도 드물다.

집에 돌아가기로 한 이들을 누구도 비판할 수 없다. 누구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집은 집이다 ― 특히나 병원이 표적이 된 동안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기 위해 가자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는. 인종학살 초기에 이집트로 피신한 가자인은 최소 115,000명이다. 그들은 살아는 남았대도 ― 감정적, 육체적, 재정적으로 ―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전쟁은 우리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았어.” 친척이 영상통화로 내게 한 말이다. “돌아가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 나는 가자를 사랑해.”

이 소식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는 동안 많은 이들이 거짓 희망에 매달렸다. 실제로는, 이 재개방은 이백만 명이 넘게 갇혀 있는 가자라는 바다에 비하면 겨우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기사 제목 너머 있는 그대로를 보기만 하면 알 것이다, 이 조치는 대체로 보여주기일 뿐이다. 이스라엘은 완화인 체 하지만, 현지의 실상은 아프리만치 그대로다.

알-시파 병원 원장은 충격과 비탄에 잠긴 목소리로 “하루에 겨우 부상자 다섯 명만 가자를 나가도록 허가할 거라고 오늘 전달 받았습니다” 하고 말했다. 우리 모두 똑같은 기분이다. 부상자는 이미 수만 명이고 계속해서 늘어가는데, 하루에 다섯 명이라니.

제한된 자유

이번 재개방은 극도로 제한적이다. 겨우 이만한 발표가 나기까지만도 우리의 삶을 두 해나 바쳐야 했다. 가자 공항이 파괴된 2001년 후로, 가자에서 바깥 세상으로 가는 출구는 라파 국경 ― 아랍어로는 마바르 라파Ma’bar Rafah ― 뿐이다. 그런 곳이 스무 달 전, 2024년 5월 5일에 전면 봉쇄되었다. 그날의 기분이 선명히 기억 난다. 개인적으로는 그때문에 장학금을 잃었다. 가족들이 흩어졌다. 식료품은 거의 반입되지 않았다. 부상사들은 소리 없이 고통 받았다. 그리고 세상은 다름 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지금, 세상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유로운 기분이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이동이 명단과 운에 달려 있는데 자유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은 자유가 아니다. 소리 낮춘 통제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과 다시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이탈리아에 있으니 자유롭다지만, 내 영혼은 그렇지 않다. 내 가자 출신 동료들, 망명 중인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임을 안다. 우리는 한참을 미뤄진 재회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처럼 ― 날짜를 세고 실낱 같은 가능성에 매달리며 ― 뉴스를 공유한다. “이 속도로 진행된다면 나는 2년 뒤에나 가족을 만나게 될 거야”. 어제 한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슬프게도, 사실이다.

여기 이탈리아에서 여행을 할 때마다 조용히 죄책감을 느낀다. 마음이 한참을 싱숭생숭하다. 가자에서도 삶이 이렇게 쉬웠다면 어땠을까. 이동에 제약이 없다면. 모든 학생들이 자유로이 공부할 수 있다면. 환자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점령이 없었다면.

그러니 아니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다. 세상이 보는 것과는 거리가 먼, 죄어드는 통제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정상적인 상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는 ― 늦게라도, 다친 채라도 ― 마침내 그런 정상적인 상태가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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