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서사하라 점령 50년 ― 범아프리카 반제 투쟁 새로 쓰기 (사담 알크티프, 2026)

원문: Saddam Alktif, “Fifty Years of Moroccan Occupation: Renewing the Pan-African Struggle Against Imperialism (The First Pan-Africa Newsletter (2026))”, Tricontinental: Institute for Social Research, 2026.01.27.

모로코가 침략을 벌인지 어언 50년, 서사하라는 아프리카에 마지막 남은 식민지다. 이 50년사는 제국주의가 점령, 자원 약탈, 억압, 그리고 범아프리카 해방 운동의 배신을 통해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를 보여준다.


아프리카 전체의 해방과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독립은 무의미하다.

― 크와메 은크루마Kwame Nkrumah, 1957년 3월 6일 [가나] 독립의 날 연설

1957년 10월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사흐라위인Sahrawi의 자결권을 확인하고 며칠 후, 스페인 식민단이 물러가던 중에, 모로코에서는 35만 명이 넘는 민간인을 서사하라로 보내 군사 침략과 점령을 엄호했다. 50년이 지난 지금, 서사하라는 아프리카 대륙에 마지막 남은 식민지다. 이 ‘50주년’은 그저 역사 속의 어느 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와 세계를 비추는, 제국주의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다만 재구성되었을 뿐임을 상기시키는 거울이다.

가자에 폭탄이 떨어지고 군부 엘리트들이 수단을 황폐화하고 다국적 기업들이 콩고에서 광물을 뽑아내는 한편에서, 서사하라는 자원, 시장, 지정학적 통제를 위한 전 지구적 전쟁에 또 하나의 전장이 되고 있다. 모로코는 서구 열강 ― 합중국, 프랑스, 스페인 ― 의 전적인 지원 하에 서사하라를 침략했다. 국제법, 국제연합 헌장, 모로코는 해당 영토에 대한 주권이 없음을 확인한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 의견(1975)을 무시한 침략이었다. 제국주의는 블라디미르 레닌이 쓰기로 ‘열강이 초과이윤을 추출하기 위해 세계를 분할하는 것’이다. 스페인은 형식적으로는 철수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물러나지 않았고, 2002년까지 부 크라Bou Craa 인산염 광산의 소유권 지분 35%를 보유했다.

소유권이 모로코 당국으로 넘어가고 점령이 새로운 추출·축적 통로를 열면서, 서사하라는 ― 인산염, 어업, 해안지대, 풍력이 국제 자본 회로에 깊이 통합된 ― 이를테면 잘려나간 영토가 되었다. 약탈은 두 가지 부문에 집중되어 있다.

  1. 비료 부문: 모로코 국유 기업이 부 크라 광산에서 추출하는 인산염은 모로코 인산염 수출량의 10%를 차지하며, 그 가치는 연간 수천만 달러에 이른다. 이 인산염은 (엘-아윤El-Ayoun 항구까지 100km를 이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해 세계 각지의 비료 회사로 운송되며, 사흐라위 사람들의 자원을 고갈시켜 점령에 돈을 벌어다 준다.
  2. 어업 부문: 서사하라의 연안 해역은 2020년 모로코 연안 어획 총량의 73%, 금액 기준으로는 63%를 차지했다. 현재는 무효화된 유럽연합-모로코 어업 협정이 유지되었던 당시에는 유럽연합 어획량의 99%가 사흐라위 수역에서 나왔으며, 점령 영토에서 훔쳐간 농수산물은 2022년 한 해에만 5억 9천만 유로 수출을 기록했다

이 경제활동의 배후에는 샤흐라위의 노동력 착취해 제 권력을 유지하는 모로코 엘리트 지배층 ― 매판 부르주아지 ― 이 있다. 부 크라 인산염 광산에서 모로코 정착자들은 최상위 숙련직은 차지하고 사흐라위인들은 체계적인 고용 차별을 당한다. 어업 협정에 따른 유럽연합의 부문 지원금 대부분이 들어간 다클라Dakhla 어장들에서 기반시설 사업은 ― 선주 인구가 아니라 ― 모로코 정착자들과 점령 경제에 봉사한다. 점령은 그저 지정학적 분쟁이 아니라 계급 기획이다.

이런 경제 구조를 지키기 위해 오늘날 모로코는 한때 아파르트헤이트 남아공이 아프리카 남부에서 했던 것과 같은 역할 ― 제국주의 열강의 이익을 수호하는 역내 경찰 노릇 ― 을 하고 있다. 모로코는 프랑스와 합중국의 군사 파트너, 유럽연합의 경제 파트너, 이스라엘의 안보 파트너이자 걸프만 군주국들의 의존국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모로코 왕가와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해가 반영된 것이다. 아밀카르 카브랄Amílcar Cabral의 설명대로, ‘적은 추상적인 힘이 아니라 지배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회 계급이다.’

모로코의 점령은 수많은 순교자, 수감자, 고문 당한 활동가를 낳았다. 2010년에 사흐라위인 2만 명 이상이 모인 평화적 농성장을 해산 당한 후 체포된 그데임 이지크Gdeim Izik 수감자들은 [2013년에 선고가 나온 후] 12년째 복역 중이다.[1]역주 ― 그데임 이지크 농성장Gdeim Izik protest camp은 사흐라위인들에 대한 차별과 인권 침해에 항의하며 2010년 10월 9일에 농성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 Continue reading 처음 기소 된 25명 중 19명이 여전히 감금 당한 채로 ― 매달아 놓고 때리기, 성폭력, 손톱 뽑기 등 고문을 가해 받아낸 자백을 토대로 선고된 ― 20년형부터 종신형까지를 살고 있다.

국제연합 고문방지위원회에서는 재판부가 제대로 된 조사 없이 받아 낸 부당한 자백을 근거로 삼은 여러 사례를 확인하고 모로코의 고문방지협약 위반을 여러 차례 비판했다. 수감자 대부분은 가족이 있는 엘-아윤과 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갇힌 채 치료도 받지 못하고 독방에 장기간 갇히며, 이에 항의해 단식 투쟁을 벌이다가 구타 당한다. 사흐라위 여성 활동가들은 가택 연금, 성폭력, 상시적인 감시를 당한다. 해외 감시단은 추방 당한다. 언론인들은 폭행 당한다. 가택은 습격 당한다. 그럼에도 사흐라위의 저항은 꺾이지 않는다. 토머스 산카라Thomas Sankara가 말했듯, “사상을 죽일 수는 없다. 사람은 죽일 수 있을지라도 자유를 결의한 이들의 운동은 죽일 수 없다.”

점령 당한 서사하라에서의 체계적, 식민적 폭력을 보여주는 콜라주 (왼쪽에서 오른쪽, 위에서 아래 순서). 1. 모로코군과 모리타니군의 폭격을 피해 알제리 틴두프 인근 사흐라위 난민촌으로 피란 중인 난민들. 2. 2010년, 점령 당한 엘-아윤의 마탈라Matalla에서 시위를 하던 중에 여러 사흐라위 인권 운동가, 민간인들과 함께 얼굴을 구타 당한 메이엠 므기즐라트Meriem Mghizlat. 3. 서사하라 피점령지에서 2015년 1월 31일에 모로코 점령군과 정착자들에게 살해 당한 모하메드 라민 하이달라Mohamed Lamin Haidala의 사진을 들고 있는 타브카르 하디Tabkar Haddi. 4. 미리즈Mhyriz의 집단 매장지를 발굴해 1976년에 납치·실종된 사흐라위인들의 유해를 확인하는 스페인 연구자들. 5. 2015년 말, 단식 농성 중인 사흐라위 정치수들을 지지하고 모코로에 점령 영토 내 자결권에 대한 총투표를 요구하는 평화 시위.

서사하라 투쟁은 외떨어진 분쟁이 아니다. 전 지구적 남부 곳곳에서 군사 점령, 자원 추출, 정치적 주권 파괴를 통해 지배를 부과하고 있는 전 지구적 제국주의 구조의 전선이다. 수단에서는 외국계 군사 조직들이 민간인들을 살육하는 가운데 해외 기업들이 ― 인도적 재앙을 투자 기회로 바꾸어 ― 조용히 금, 토지, 물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한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의 포위, 정착, 인구공학 체제가 반투스탄Bantustan[2]역주 ― 아파르트헤이트의 일환으로 조성되는 민족 격리 지구. 장벽 건설, 자원 수탈, 군사 검문소, 고의적인 선주민 사회 분열 조장 등 모로코 서사하라 정책에 청사진을 제공한다. 콩고에서는 세계 기술 거인들이 현지 인구들을 구조적 방치의 조건 속에 남겨둔 채 전 지구적 자본을 살찌우는 폭력의 사슬을 통해 코발트를 비롯한 광물을 추출하는 마찬가지의 ― 그들로서는 이미 초월한 체 하는 ― 식민 노동 체제를 영속화한다. 패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umba의 말대로, ‘역사가 말하는 그날이 올 것이다 ― 브뤼셀이나 파리, 워싱턴에서 가르치는 역사가 아니라 해방된 우리 나라들에서 가르치는 역사가 말하는 그날이.’

범아프리카주의가 혁명적이려면 이 대륙에 마지막 남은 식민지를 직시해야 한다. 그 외에는 모두 배신이다. 아프리카 연합African Union은 사흐라위아랍민주공화국Sahrawi Arab Democratic Republic(SADR)을 정식 회원국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몇몇 아프리카 정부는 모로코의 압력과 걸프 연안국들의 돈에 굴복했다 ― 은크루마가 『신식민주의: 제국주의의 최종 단계Neo-Colonialism: The Last Stage of Imperialism』(1965)에서 한 ‘아프리카의 적은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에도 있다.’라는 경고가 떠오른다. 정부들이 주저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민중 운동의 ― 노동조합, 여성 운동, 학생 조합, 사회주의 조직, 농민 단체의 ― 임무다.

유명한 인권운동가 체이크 방가Cheikh Banga(왼쪽)와 마푸다 밤다 레프키르Mahfouda Bamba Lefkire(오른쪽)는 줄곧 정치적 수감, 억압, 협박의 위험에 처해 있다. 칼리드 부프라유아Khalid Boufrayoua 그림. 점령 50년사에 대해서는 이 곳을 보라.

연대를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투쟁 강령이 필요하다.

  1. 케이프 타운, 카이로, 아크라, 알제 등 전역의 사회주의 정당들, 노동 조합들, 청년 운동들, 여성 조직들을 아우르는 서사하라를 위한 범아프리카 연대 전선을, 이 대륙 전역에서 억압에 저항하고 조직화된 행동을 할 수 있는 통일된 정치적 기반을 건설해야 한다.
  2. 모로코의 범죄 ― 전쟁, 드론 공습, 고문, 납치, 사흐라위 자원 약탈 등의 범죄 ― 를 폭로할 민중 법정을 구성하고 점령에서 이윤을 내는 서구, 이스라엘, 걸프 연안국 기업들을 법정에 세워야 한다.
  3. 모로코가 사흐라위인들의 자결권을 인정할 때까지 ― 경제적, 외교적, 정치적으로 ― 아프리카 연합에서 모로코를 제재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4. 사흐라위 정치수 석방을 위한 국제적 캠페인을 조직하고 그데임 이지크 활동가들을 비롯해 수감 중인 활동가들을 반제국주의 저항의 국제적 상징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5. 특히 ‘아프리카 리더십’이라는 허울 아래 식민주의의 이미지를 세탁하는 대학, 싱크탱크, 문과 기관에 등 점령에 공모하는 모로코 국가 기구들에 대한 학술적, 문화적, 제도적 보이콧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6. 사흐라위 난민촌을 방문하고 대중 저항의 구조를 연구하고 증언을 기록하고 그 투쟁을 각자의 공동체에 전할 범아프리카 청년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7. 샤흐라위에서 훔쳐 간 인산염과 수산물의 운송 차단에 함께하도록 전 세계의 노조들, 특히 항만 노조들을 조직해야 한다. 남아프리카, 뉴질랜드 등지의 노동자들이 용감한 실천은 노동자 국제주의가 제국주의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음을 증명한다.
  8. 서사하라가 라틴아메리카에서부터 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사회주의, 혁명, 좌파 운동의 강령에 포함되어야 한다 ― 그저 주변적인 대의가 아니라 전 지구적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투쟁의 중심 전선으로서 말이다.
  9. 핵심적으로, 독립적인 아프리카 언론 플랫폼을 구축하고 피점령 영토 및 디아스포라의 사흐라위 언론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다언어 디지털 캠페인을 벌이고 활동가들에게 프로파간다 대응 기술과 통신 보안을 교육함으로써 서구 정부들, 모로코 프로파간다 네트워크들, 걸프만에서 돈을 대는 허위 정보 장치들의 언론 장악을 타개해야 한다.

아밀카르 카브랄의 가르침대로, ‘연대는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상기한 ― 정치, 경제, 문화, 언론에 관한 ― 제안들은 서사하라와의 연대를 제국에 맞설 수 있는 혁명적 힘으로 바꾸기 위한 실천적 지침을 구성한다.

1980-1987년에 건설되어 서사하라를 가른 모로코 제방berms[3]역주 ― 콘크리트가 아니라 모래, 흙 등으로 쌓은 둑 형태의 장벽이다.(치욕의 벽Wall of Shame) 지도. 현재 모로코는 4, 2, 5, 6번 제방 북쪽 및 서쪽 영토를 점령하고 있다. 티파리티Tifariti와 주크Zug를 비롯한 동쪽 영토는 사흐라위아랍민주공화국의 폴리사리오 전선Polisario Front에서 사수하고 있다. 출처: Salvatore Garfi, An Archaeology of Colonialism, Conflict, and Exclusion: Conflict Landscapes of Western Sahara (2014).

모로코 장벽 ― 모래, 지뢰, 인종 분리의 2,700 킬로미터짜리 장벽 ― 은 그저 군사 장벽이 아니다. 끝나지 않은 아프리카 혁명의 물질적 표현이요 제국주의와 그 매판 대리자들이 이 대륙에 새겨넣은 상처다. 하지만 그 어떤 장벽도, 그 어떤 군대도, 그 어떤 점령도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띤 민중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미래는 저항하는 이들의 것이다. 제 땅을, 존엄을, 역사를, 전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것이다.

혁명은 계속된다. 서사하라는 해방될 것이다.

진심을 담아,
사담.

주석

주석
1 역주 ― 그데임 이지크 농성장Gdeim Izik protest camp은 사흐라위인들에 대한 차별과 인권 침해에 항의하며 2010년 10월 9일에 농성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백 명 수준이었으나 금세 수천 명으로 늘었고, 10월 하순부터 군경을 투입한 모로코 정부는 11월 8일에 수천 명을 연행하고 농성단을 강제 해산했다.
2 역주 ― 아파르트헤이트의 일환으로 조성되는 민족 격리 지구.
3 역주 ― 콘크리트가 아니라 모래, 흙 등으로 쌓은 둑 형태의 장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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