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Khaled Al-Qershali, “Restoring dignity to Gaza’s displaced,” The Electronic Intifada, 2026.03.27.

가자 중부 데이르 알-발라의 제1 알-호리야al-Horiya 피란촌은 알-나킬 주유소 맞은편, 야자수 몇 그루가 서 있는 모래사장에 위치해 있다.
인종학살 전에는 그냥 공터였다. 2023년 10월에 피란으로 처음 이 곳에 온 주민들이 알-호리야(아랍어로 “자유freedom”)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윽고 2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제2 알-호리야가 생겼다.
이곳에 있는 150개 가량의 천막은 ― 구호 기구들에서 제공하는 공식 천막과 달리 ― 임시변통으로 만든 티가 난다. 밧줄로 서로 묶여 있고 날씨 탓에 상한 곳에 비닐이 겹겹이 덧대어져 있다.
이 부지에 사는 약 300에서 450명 중 대부분이 여성이며, 가자에서 피란한 팔레스타인인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갖가지 곤란을 겪고 있다. 특히 먹을거리와 의약품, 담요가 부족하다.
근처에 사는 퇴직 공무원, 예순 살 칼라프 카셈 칼라프Khalaf Qasem Khalaf는 이스라엘의 폭력을 피해 데이르 알-발라로 대피한 이들을 위해 일찌감치 방법을 찾아 나선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사람들이 데이르 알-발라로 피신 오면서 위원회가 만들어졌다”며 “알-나킬 거리 근처 공터 두 곳의 주인들에게 허락을 구한 후에 사람들을 만나 천막 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자식 일곱을 둔 아버지인 칼라프는 새로 피란 온 이들이 구호품이나 필수적인 일들을 배분할 수 있도록 피란촌 위원회 구성을 도왔다.
칼라프는 “피란민들을 힘 닿는 데까지 돕고 싶었지만, 사실 우리가 우리가 한 일은 대부분 그들을 단체들과 연결해 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이곳으로 피란한 가족들에게서 이름, 신분증 번호, 가족 구성원 수 등의 정보를 취합하고 구호 단체들과 협력해 음식과 용품을 전달한다.
그는 “피란촌에서 구호품을 배분할 때면 늘 구호품이 부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위원회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피란촌 주민들은 구호품을 받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칼라프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매일 아침 급수차를 보내고 월드센트럴키친에서 타키야takiya ― 공동 취사장 ― 을 통해 “오후에 육수로 익힌 쌀이나 렌틸 약간” 같은 따뜻한 식사를 제공한 것을 언급하면서도 “구호 단체들에서 난민촌을 온전히 지원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모든 것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항상 부족한
2026년 3월 현재, 국제연합 인권사무소에 따르면 약 7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가자에서 피란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 중 상당수가 “위태롭고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살고 있다.
가자 곳곳에서 천막촌이나 학교 등 다른 대피시설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비공식 피란촌 위원회는 필요한 것을 확인하고 인도주의 단체들과 조율해 구호품을 조달하는 통로다.
제한된 자원으로 가자 지구 전역에서 활동하느라 구호 기구들이 여력이 없는 상태이기에 피란촌 주민들이 이렇게 조직화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겨울이 오고 피란촌에 물이 넘쳐 제1 알-호리야 주민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칼라프에 따르면 젊은이들이 모여 도랑을 파서 물을 뺐다고 한다.
그는 “젊은이들은 천막이 무너지면 다시 세우는 걸 도왔고 심지어 우리가 음식 배분하는 것도 도왔다”고 했다. 그들은 땅에 고인 물을 빨아들이게 하려고 피란촌 뒤 해변에서 모래를 퍼오곤 했다.
피란촌의 여성들도 합심해 아이들을 돌보았고, 각자 할 수 있는 대로 교육을 맡기도 했다. 이스라엘이 곳곳에서 학교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피란촌에는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가장 우려되는 것 중 하나는 영양실조다.
칼라프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문제는 너무 많고 자원은 부족했다”며 “그런 노력들에 단체들의 뒷받침이 없어 결국 해결할 수 없었다”고 했다.
“더 많이 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모두 상황이 안 좋다.”
“모두가 남을 돕고 막중한 책임을 지는 데 시간과 수고를 쏟을 수는 없지만, 나는 사람들을 돕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급여 같은 건 받지 않는, 자원해서 하는 일일 뿐”이라고 했다.
“위원회는 최선을 다했다”
제1 알-호리야 난민촌에서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알-카라마al-Karama ― 존엄 ― 피란촌이 있다. 커다란 돔형 천막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이다. 첫 천막이 들어선 것은 2023년 11월이다.
“폭격이 쏟아진 탓에 사람들은 빈 땅만 있으면 어디로든 피신했다.” 여섯 아이를 둔 아버지이자 이곳의 위원장인 서른일곱 살 아흐마드 사브리 카셈Ahmad Sabri Qasem의 말이다.
카셈은 인종학살 전에는 농업부에서 농업 기술자로 일했고 지금은 피란촌 위원장이다. 위원은 총 마흔두 명, 그 중 아홉 명이 전일제로 일하며 주민들을 돕고 있다.
카셈은 알-카라마 주민을 약 500 가구로 추산한다. 베이트 하눈에서 데이르 알-발라로 피신한 카셈은 데피란촌 이웃들을 설득해 구호 기구들에 연락을 취할 위원회를 조직했다.
“[처음에는] 50 가구 정도가 있었고, 몇몇 사람들과 함께 단체들에 제시할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피란촌 인구가 늘면서 위원회도 커졌고, 전문 영역에 맞추어 더 많은 사람을 뽑았다.
그는 “몇몇 단체들이 [위원회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 걸 도와줬다”며 “예컨대 학교 천막을 지을 땐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을 뽑아 아이들을 가르치게 했다”고 말했다.
위원회의 역할은 주로 구호 기구들과 연락해 [구호품 등을] 배분하고 손님을 맞는 것이다.
카셈은 “위원회 산하인 교육 분과는 학교를 운영하고 보건 분과는 의료 지원을 한다”고 덧붙였다.
갈등이 생길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문제 해결을 위해 난민촌에서 개입한다. 예컨대 물을 둘러싼 갈등은 큰 문제다.
급수차가 도착하면 서로 자기 물통을 먼저 채우려고 싸움이 벌어진다. 모두가 쓰기에 충분할 만큼 물이 오는 날은 없기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피란촌은 자력으로 버텨야, 끝없는 자원 부족을 감내해야 하는 것만 같았다. “이곳을 맡아 책임지고 전 주민을 지원하는 단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주민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들을 다 더해도, 사막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존엄 유지하기
알-카라마가 생긴지 두 해가 넘었지만 많은 주민들은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집이 무너진 사람도, 이스라엘에서 통제하는 구역에 있는 사람도 있다. 겨울이 오면서, 피란촌의 문제들은 그저 심해지기만 했다.
카셈은 “이곳 주민 대부분은 가자 북쪽, 베이트 하눈과 베이트 라히야 출신이었고, 겨울이 되면서 불안정감이 고조되었다”고 했다.
“휴전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무너진 집으로, 자기 동네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이어 “천막, 매트리스, 담요, 옷가지는 다 낡아버렸다. 가자 지구에 물품이 반입되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이들이 괜찮은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천막이 필요한 가족이 500 가구가 넘었지만 그는 98개밖에 구하지 못했다.
카셈은 “한 집안의 아버지가 부상이나 장애를 입으면, 혹은 아예 살해 당해서 아무 소득원도 없이 부인과 아이들만 남게 되면, 그런 집들은 재정 지원이 정말로 절실해진다”며 “먹고 마실 것 말고도 생활에 많은 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카셈은 피란촌에서 도울 여력이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도움이 필요한 힘 없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다.
이스라엘의 가자 구호 체계 파괴
알-자흐라와 누세이라트 사이에 있는 알-부레이즈 난민촌에서 농부로 일했던 마흔세 살 무함마드 아부 자발Muhammad Abu Jabal은 2023년 10월에 아내와 — 제일 큰 아이가 15살인 — 다섯 아이와 함께 데이르 알-발라 여자중학교로 피란했다. 스무 살 난 아들 푸아드는 이스라엘군에 살해 당했다.
아부 자발은 가족이 몸을 피할 교실 하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인종학살 첫 주가 지난 후에 대피한 사람들은 대부분 공간을 찾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운동장에 학교 뒤뜰에 천막을 쳤다”고 말했다.
비교적 상태가 괜찮고 이스라엘의 폭격에 손상되지 않은 이 학교는 UNRWA, 즉 국제연합팔레스타인난민기구에서 운영하는 곳이었지만, 아부 자발에 따르면, 구호품은 별로 보급되지 않았다.
그는 “나도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돕지 않으면 그들도 방법이 없을 테니까, 온종일 주민들을 도왔다”고 했다.
첫 번째 파란 때였던 2023년 10월에 구성된 첫 번째 위원회는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 문제로 와해되었다.
두 번째 위원회는 2025년 1월 휴전 후에 구성되었는데, 아부 자발은 이 위원회는 학교로 피란한 주민들과 구호 단체들을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이 단체에 가서 구호를 요청한다고 단체에서 그 사람만을 위해서 뭔가 줄 수는 없다”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가야 하며, 공동체 운영진이 나머지 피란민들을 대신 구호품을 받아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구호품은 배분을 책임지며, 주민 안전을 위해 밤마다 교문을 닫는 일도 맡는다.
아부 자발은 “매일 밤 나나 아부 아마르나 위원회의 다른 사람이 열한 시쯤 정문을 닫는다”고 했다.
하지만 피란촌의 모두가 하나씩 역할을 맡고 있다고도 했다.
“젊은 사람들은 음식 배분을 돕거나 겨울에 천막이 무너진 사람들을 돕고 한다”고 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로 이스라엘은 가자로 들어오는 구호품은 제한하거나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집단 처벌의 일환이다. 이스라엘은 UN이나 다른 인도적 구호 활동가들을 표적공격 했으며 또한 가장 절실한 구호를 제공해 온 조직인 UNRWA를 근거 없이 비방해 일부 기부 국가가 재정 지원을 중단하게 만들기도 했다.
가자에서 이런 식의 구호 체계 약화는 곧장 구호 활동 축소로 이어지며,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바로 피란촌들이다.
아부 자발은 “UNRWA에서 마지막으로 구호품은 보급한 것은 2025년 2월이었다”고 했다.
“우리 가운데 책임을 지는 역할을 맡고 도움을 제공한 이들은 인도주의적인 이유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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