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제 성서를 지닌다 (모함메드 R 마위시, 2026)

원문: Mohammed R. Mhawish, “ The body keeps its own scripture,” We Are Not Numbers, 2026.03.08.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두려웠다 ―

성스러운 말씀이었음을

우리는 그래서 안다.

어머니 내게 가르치시길

어떤 진실들은 반드시

수도꼭지를 열어 놓고 말해야 한다고.

물소리에 묻히는 어머니의 음성은

비밀스런, 없어선 안 될,

둘째 강처럼

뿌리를 적시고

바다에는 이르지 않았다.

여자들은 다 그렇게 말하는 줄 알았다.

물소리도 문장의 일부인 줄 알았다.

침묵도 문장부호 같은 것인 줄 알았다.

모든 언어가 다 그런 줄 알았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미처 몰랐다

다른 곳에서는

문장이 그냥

끝난다는 것을.

박탈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다정함이 있다 ―

평범한 빵도

성체를 대하듯

주린 손을 내밀고,

목구멍이 성물함이 되도록

한참을

말을 머금어

속에 든 것을

더욱 소중히 간직한다.

우리는 책장의

여백에 적힌

시편이었고

제국은 한 번도

본 적 없다 했다.

딴나라에서, 가만 선 한 남자를 보았다 ―

두 손은 주머니에 꽂고,

곧추 세운 허리는 아무 사과도 않았고

벌어진 어깨는

아무 허락도 구하지 않았다 ―

그리고 나는 울었다,

소리 없이, 나중에, 홀로,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가

되는 법을 배운,

저라는 인간을 재료로

조심스런 외교 활동을 빚어낸,

몸가짐을 협상으로

화한

고향땅의 모든 몸들을 위해.

몸은 제 성서를 지닌다.

무엇을 구하라 배웠는지를

몸은 잊지 않는다.

내가 쥐고 싶은 것은

오지 않는 빵 ―

국경 검문소에서는 밀가루를

탄약 같이 여긴다.

그들에게는 정말로

그러하므로

잘 먹은 몸은 반역이므로

가득 채운 위장은

과격 행위이므로

오늘 아침을 먹은 아이는

저녁이 되면

왜냐고

물을 것이므로.

마치 사막이

물을 빨아들이듯

책을 읽어댔다 ―

내 온 존재로,

타는 목마름으로.

마침내 한 방울이 떨어지고서야

내가 목이 마른 줄을 알았다.

집에서는 허락되지 않았던 책들이었다 ―

내용 때문이 아니라

책이라는 것이 전제하는 바 때문이었다.

그들이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전제,

책을 읽는 이는

알 권리를 타고 났다는 것.

안다는 것은 이름 붙인다는 것.

이름 붙인다는 것은 요구한다는 것.

요구한다는 것은

점령은 답할 수 없는

물음이 된다는 것.

어느 추운 도시에서 한 학자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회색 불빛과 성당의 뼈들로 가득한 그 도시에서

그녀는 논문을 썼다,

세상이

영혼에게 아직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동트기 전의 한 시간

주방 탁자에서.

그녀에게 기도 같은 느낌이냐고 물었다,

글쓰기가, 거리가, 여기서 그러는 것이.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신께서 여기서는 쓰시지 않을 듯한

언어로 기도하는 기분이야 ―

그래도 기도하지,

그러지 않으면

내 침묵 마저도

그들 차지가 될 테니까.

그리고 예술가들 ―

아아, 예술가들,

아름다운 것을 승인하기 위해

아름다움을 만들지는 않는 이들 ―

영예를 위해서나

자산목록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몸이 숨을 내쉬듯 만드는 이들,

허파도 그리 할 것이기에

만드는 이들.

누군가 내게 그림 한 점을 보여주었다 ―

그녀 할머니의 무화과 나무,

정원,

쓰러진 문짝을,

어찌나 질기고 쓰라린 슬픔으로 그렸는지

그날 오후의 냄새를 맡을 수도

어린 시절 그 날 그 시간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불도저가 미처 다 밀어버리지 못한.

나는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해?

그녀가 답했다,

  “부활시키는 거야”

한 줄 한 줄이 다 증언이다.

나는 마지막 증인,

못 믿을 증인이

되지는 않으리라.

그들은 전부 앗아갔지만

소장訴狀에 다 적을 수는 없다.

느긋한 시간,

다 보이게 탁자 위에 펼쳐둔 책,

자신의 모국어로

소리 죽이지 않고 말하는 문장,

바로 서서 주머니에 넣은 두 손,

그저 목이 말라

틀어둔 수도꼭지,

감시를 모르는 어린 시절.

이것은 일상적인 것들의 전례문 ―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범죄로,

우리의 존재를

그들이 이름 가진 수많은

나라들보다도 더 오랫동안

꺾으려 애써온

과제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여기 꽃피는 상처가 있다 ―

나는 이 차가운, 무심한 딴곳에 와서

나를 받아 준 모든 방에서

평안을 찾았다.

온 나라가 한 호흡에 살 수 있을 듯이

그 이름을 말하는 이방인에게서,

우리의 금서들이

다른 책들 사이사이 서서

절대적이고 무지한 자유를 누리는 책장에서,

내게 알려줘 ― 하고 말하고는

그 말을 언약처럼 붙들었던 누군가의 부엌에서,

옷걸이와 달력 사이에 걸린

그저 보라고만 하는,

박수 치지도

가지려 하지도 말고 ―

그저 보이게 두라고만 하는

복도의 그림에서.

그것은 인류의 가장 오랜 부탁,

다른 모든 부탁의 아래에 있는

그런 부탁.

나는 그것을 찾았다.

우리를 찾았다,

불타버린 유적처럼

흩어져 번뜩이는 ―

하지만 그것으론 모자랐다.

그것으론 모자랐다.

그것은 반사상이지

강이 아니었고,

문자이지

그것을 쓴 손이 아니었으며,

이국의 입이 말하는 그 이름에는

세상의 모든 다정함이 담겼어도

그 무게는 조금도 담기지 않았다 ―

땅에서 나와

땅을 딛고 서는

그 고유하고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무게는.

그 어떤 비가 시인도 쓰지 않은 슬픔이 있다 ―

제 나라가

모든 곳에서 정확히 묘사되는

그러나 제 나라에서만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는 이의 슬픔.

누가 먹을 수 있나, 여기서.

누가 말할 수 있나, 여기서.

누가 설 수 있나, 여기서,

허리를 펴고 당당히,

그리고 이 자유를

다른 이에게서 받은 것을 지니듯

지닐 수 있나 ―

그 감사하는 마음은

또한 죄스러움이요

그것은 또한 사랑이요

그것은 또한 분노요

그것은 또한 그 넷 모두인데,

매일 저녁

만찬에서

도무지 하릴없고.

나는 자유롭다

찢겨진 책장이 자유롭듯 ―

책에서 떨어져 나온,

여전히 말들을 품은,

저자가 뜻한

순서대로

읽을 수 없는.

떠나기 전의 우리로

나를 되돌릴

돌아감은 없다.

우리가 떠난 것으로부터,

인간이라는

조건으로부터,

지도제작술로부터,

거기로부터,

세상이 논쟁을 벌이기로

결정한

바로 거기로부터

나를 해방할

떠남은 없다.

우리가 거기 있는데,

우리가 그 논쟁의

재료인데.

우리는 우리를 무력하게 하는

저 멀리서

우리의 나라를 누구보다 분명히

보는 이들.

우리는 본다 우리 나라를 ―

죽음을 앞둔 이가

온 생을 돌이켜보듯,

믿을 수 없이 선명하게,

정확히 그 순간에

당도하는 그것

특유의 잔인함으로 ―

그리고 그것은 우리와 함께 귀가하지 않는다

그것을 가져갈

집에 우리에게는 없으므로.

오직 이것만이.

이 유예된 기억만이.

이 경야만이.

정주지가 되어버린

이 틈새만이.

강 바깥에 선 우리는 안다

강의 돌멩이를 빠짐 없이,

그 차가운 수류를 빠짐 없이,

빛에 부서지는 물을

바라보기조차 힘든

모든 곳을 빠짐없이 ―

그리고 우리는 젖지 않는다.

떠난 후로 우리는

단 한 번도

젖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

이것이 바로

상처 속에서 피어나고

치유라 불리지 않을 것 ―

가지지는 못하고

알기만 한다,

보이는 데에 서지 못하고

보기만 한다,

무지막지하고 소중하고 집 없는

사랑이

가닿는다,

언제나 가닿는다,

우리 것인

저기 있는

실재하는 ―

우리를 받아주지 않을

우리를 받아주지 못할

기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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