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레바논과 이란에서 ‘가자 독트린’을 쓰고 있다 (파리스 지아카만, 2026)

원문: Faris Giacaman, “Israel is using the ‘Gaza doctrine’ in Lebanon and Iran,” Mondoweiss, 2026.03.06.

도시를 조감하듯 찍은 사진. 대부분의 건물이 반파 혹은 완파되어 있다. 비포장 상태로 보이는 도로에 세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작게 보인다.
가자지구 남쪽 칸 유니스에서 무너진 건물들 사이를 걸어가는 사람들. (사진: 오마르 아시타위 / APA Images)

목요일 이른 시각, 이스라엘 재무부 장관 베잘렐 스모트리히는 레바논 국경을 시찰하고 “조만간 다히야는 칸 유니스처럼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지난 두 해에 걸쳐 전개된, 이스라엘이 역내 주민들을 대하는 방식의 역사적 변화를 드러내는 발언이다.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 남쪽 다히야 지구 전역에 전원 소개 명령을 내렸다. 50만을 훌쩍 넘는 주민이 사는 도시가 대공황에 휩싸였다. 다히야와 비슷하게 헤즈볼라 지지 기반층이 다수인 레바논 남부에도 광범위한 소개 명령이 내려졌다. 사람들은 가자를 떠올렸다. 비평가들지적대로 베이루트 역시 전멸할 운명을 겪을지도 몰랐다.

테헤란에 펼쳐진 “종말의 날 같은” 광경에서도 유사한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방위부 장관 이스라엘 카츠는 이를 “테헤란을 파괴”하기 위한 “토네이도 계획”이라 칭했다. 테헤란 내 “민간 구역의 잘 보이는” 표적들을 초토화하는 전술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이 작전으로 테헤란 남서부에서 어제만도 추가로 두 곳의 학교가 표적이 되었다.

이란에 대한 합중국-이스라엘의 전쟁이 7일차에 접어들고 헤즈볼라가 레바논에 두 번째 전선을 펴는 가운데, 가자는 비대칭전의 새로운 모델이 되었다. 여전히 비슷한 논리를 따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이 군사 행동을 전개하는 방식의 질적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스라엘의 구 독트린

지난 수십 년 간 이스라엘의 군사 전략은 적에게 과도한 무력을 행사해야 하는 정책에 기반했다. 군사 행동의 목적은 그저 게릴라 집단들을 타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온 공동체들을 벌하는 것이었다. 군 관계자가 처음으로 이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2008년으로, 당시 북부 사령관이었던 가디 아이젠코트는 2006년 레바논 전쟁 때 다히야 지구 전역을 초토화한 이스라엘의 방침이 앞으로도 모든 곳에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의 논리는 간단하다. 헤즈볼라의 대중적 기반을 낳은 사회 역시 처벌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히야에서 민간인들이 표적이 된 것은 “부수적 피해”가 아니었다. 그 부수적 피해야말로 핵심이었다.

아이젠코트는 이 메시지에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2006년에 베이루트 다히야에서 벌어진 일이 이스라엘이 포구를 겨누는 모든 마을에서 벌어질 것”이며 “우리는 [그 마을들에] 감당 못할 전력을 투입해 엄청난 피해와 파괴를 가할 것”이라고, “우리 입장에서 그곳들은 민간 마을이 아니라 군사 기지들”이라고 공언했다.

이 정책은 “다히야 독트린”이라 불리게 되었지만 레바논에만 적용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은 2008년부터 2023년까지 가자에도 같은 모델을 적용해 주기적으로 하마스와 그 사회적 기반 모두에 피해를 입히기 위한 학살을 벌였다. 이 정책의 다른 이름은 “잔디 깎기”다. 저항 역량을 어떤 임의적인 선 이하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 과도한 무력 사용의 핵심은 ― 그리고 현재 이스라엘의 전행 수행 방식과의 분명한 차이는 ― 간헐적으로 제한된 시간 동안 벌어진다는 점이었다. 1948년 나크바 전쟁을 제외하면 2023년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전쟁은 대단히 파괴적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짧았다. 적들을 상대로 이스라엘이 장기적인 소모전을 버티지는 못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부차적으로는 2차대전 이후 질서의 제약들 속에서 그런 압도적인 황폐화의 정상화를 무기한 정당화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10월 7일은 형세를 바꾸어 놓았다. “잔디 깎기”로는 더 이상 충분치 않았다. 인구 전체를 지붕 없는 감옥에 가두어 두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다히야 독트린의 다음 단계는 가자 인종학살이 되었다. 합중국의 재정적, 군사적 후원으로 두 해에 걸쳐 재앙적인 민간인 처벌을 이어온 끝에 이스라엘은 이제 가자에서 행한 요소요소를 팔레스타인 국경 바깥에 적용하려는 참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레바논과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기적인 대대적 섬멸전으로 특징지어지는, 신 독트린이다.

신 독트린

스모트리히의 말은 온갖 추악함을 폭로하기도 하지만, 이 전쟁의 성격에 대한 근본적인 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바로, 이것은 국가들과 정치 집단들 사이의 충돌이 아니라 사회들의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회들은 인종, 민족, 종교 혹은 국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이 사회를 가르는 진짜 선은 외세의 지배에 저항하는가, 그것을 받아들이는가, 지배하려 드는가 하는 데에 있다.

적의 사회들을 대하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태도는 10월 7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형태를 갖추었다. 이스라엘 대통령 이츠하크 헤르초그는 2023년 10월 12일에 “저기 있는 민족 전체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한 달 후 방위부 장관 요아프 갈란트는 “우리가 가자에서 하고 있는 일을 베이루트에서도 할 수 있다”고,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레바논 시민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영향력 있는 이스라엘 퇴역 장군 기오라 아일란드는 2023년 11월에 팔레스타인인 굶기기를 옹호하는 글에서 이 정책의 요점을 짚어 주었다. 그는 “가자의 ‘불쌍한’ 여자들이 누구인가? 전부 하마스 살인자들의 어머니, 누이, 아내다”라고, “그들은 하마스를 지탱하는 기반의 일부”라고 썼다. 그가 보기에 가자에 “심각한 전염병”을 퍼뜨리는 일은 “승리를 보다 가까이로 가져올” 것이다. “하마스 전투원들, 하급 지휘관들이 이 전쟁은 허사이며 제 가족들이 돌이킬 수 없는 해를 입지 않도록 막는 게 더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일란드는 이스라엘은 “사회 괴멸”을 목표로, 그저 하마스 전투원들만이 아니라 “반대파 체제 전체”와 싸우려는 것이므로 “인도적 압박”이 “합당”하다고 여긴다. 게다가 이에 그치지도 않는다.

이스라엘 원로들이 언론에 “우리가 죽거나 저들이 죽거나”라고 말할 때, 우리는 “저들”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 무기를 든 하마스 전투원만이 아니라 병원 관리자와 학교 관리자를 포함한 “민간” 고위직들 전원, 그리고 열성적으로 하마스를 지지하는 가자 인구 전체가 “저들”이다.

아일란드는 비주류가 아니었다. 그가 쓴 글은 인종학살 첫 해의 청사진이 되었고, 일군의 이스라엘 장군들은 이를 토대로 가자 지구 북부 인구를 전부 몰아내려 했다. 2024년 10월에 시작되어 2025년 1월의 첫 번째 휴전 합의 서명 때까지 지속된 이른바 “장군들의 계획”은 북부 지역 대대적 전멸 작전을 펼쳤으며 생활 유지에 필요한 민간 기반시설 대부분을 파괴했다.

그저 굴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조건을 파괴하고 차단하기 위해서 한 사회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 이것이 가자 독트린의 기저에 있는 논리다. 레바논과 이란에서 펼쳐지는 이 정책은 광대한 이 땅을 아우르는 이스라엘 확장주의의 새 국면이 품고 있는, “대이스라엘” 정복이라는 부활한 시온주의 야망의 조짐이다.

미국 단극 체제가 저물어 가는 지금, 이스라엘은 감히 대적할 이 없는 지배자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합중국이 이란을 친 것은 팍스 아메리카나가 끝나 간다는 뜻이지만, 이스라엘에게 그것은 역내 여러 사회를 꿰는 저항의 태피스트리에 가하는 최후의 일격이다.

코멘트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