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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껴안고 살아가기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 기획사업인 홍대앞 공간 교류 페스티벌 〈같이, 가치〉의 일환으로 열린 〈불안을 타파하기 위한 행동강령〉에 세 명의 발제자 중 한 명으로 참석했다. 거기서 주절거린 내용.

불안을 껴안고 살아가기1

안팎2

#1 들어가며

불안이란 위험에 대처하는 감정의 한 방식이다. 다시 말해 불안이란 어떤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어떤 사건 ― 부정적이거나 위험할 ― 에 대비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감정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신호 불안signal anxiety이라 불렀다.) 미지의 어떤 것을 대비하는 감정으로서 불안은, 어떤 충격으로부터 자아를 지켜낸다. 이렇게 본다면 불안이란 자연스런 감정이자 인간이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감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과해질 때에 찾아온다. 적극적으로 작동하는 불안은 어떤 갈등이나 충돌로부터의 회피를 부추기기 때문이다.3

미지의 사건들로, 혹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불안은 더 커지는 듯하다. 돌려 말하면, 이것이 부추기는 회피도 더 커진다는 뜻이다. 불안으로 스스로를 무장할 때, 그러니까 조금씩 더 안전해질 때, 인간은 조금씩 더 무뎌진다. 사건들이 줄지도 모를 ‘나쁜’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스스로와 외부를 통하는 문을 조금씩 더 닫게 되는 인간은, 그런만큼 모든 충격을 더 적게 받아들이게 된다. 요컨대, 경험의 폭이 줄어드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여기에서 ‘경험Erfahrung의 빈곤’을 본다.

그는 베르그송, 프루스트, 프로이트 등을 경유해 이렇게 쓴다. “의식이 자극의 방어를 위해 부단히 긴장하면 할수록, 그리하여 의식이 성공을 크게 거두면 거둘수록, 그 인상들은 그만큼 더 적게 경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4충격은 그런 방식으로 저지되어, 즉 그런 식으로 의식에 의해 방어되어, 그 충격을 야기한 사건에 명확한 의미의 체험Erlebnis적 성격을 부여한다. 그렇게 되면 그 사건은 (곧장 의식적인 기억의 기록부에 동화됨으로써) 시적 경험을 위해서는 별 쓸모가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5

그가 보기에 이런 일은 역설적이게도, 하늘의 구름 말고는 모든 것이 변해 버린, 세계 대전을 전후한 ‘경험의 폭발’로 인해 크게 촉발되었다. 단지 전장에서 죽음의 위협을 마주 해야 했던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일상을 둘러싼 기술도, 사회경제적 상황도,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은 것이 없는 ― 모든 것이 그저 충격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만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사건을 경험하는 대신 정보를 습득한다. 그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다.6

이 국면을 생산적으로 풀어가고자 하는 그는 “새로운 야만”을 말한다. 과거의 ― 직접 경험한 것이건 전 세대에서 물려 받은 것이건 ― 경험이 더 이상 쓸모 없다면,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그러니까 “야만”의 상태가 된 것이다. 이것은 바꾸어 생각하면 우리가 이제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상태, 무엇이든 새로이 경험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음을 뜻한다. 과도한 불안으로 스스로를 너무 방어하지만 않는다면, “시대에 일말의 환상도 품지 않으면서 그 시대에 온몸으로 몰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2 유리집, 그리고 불안의 윤리

그런 점에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작가 파울 셰어바르트Paul Scheerbart(1863-1915). 이 작가는 유리로 된 집을 짓고자 했다. 외부의 풍경을, 그러니까 삶을 둘러싼 사건들을, 콘크리트 벽으로 막고 스스로를 지키는 대신, 사건에 스스로를 온전히 내어주고자 했다. 벌어지는 모든 일을 벽 없이 관찰하고자 했다. 벤야민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으로 뿌얘진 시야가 아니라, 투명한 시야로 사건들을 받아들이는 자아를 갖자고 말이다.

실제로 유리로 된 집을 지은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의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Johnson(1906-2005)1949년에 지은 한 건축물은 아예 고유명사로 “유리집Glass House이라 불릴 만큼 유명한 예다. 기둥 정도를 빼면 모두가 유리였던 이 집은 그 기발함으로 인해 모더니즘 건축사에 제 존재를 각인했으며 존슨에게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여기서 존슨은 홀로 지내며 주변의 자연 풍광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이보다 몇 년 앞서, 루드비히 판 데어 로에Ludwig van der Rohe(1886-1969)는 의사 에디트 판스워스의 주문을 받아 통칭 판스워스 하우스라 불리는 집을 짓는다. 거실의 사면이 유리로 된 이 집은 교외에 위치해 판스워스의 별장으로 사용되었다. 그 역시 이곳에서 주변의 자연 풍광을 받아들이며 취미 생활을 즐길 요량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라고 적어야 할까. 이 집에는 집을 ― 그리고 그 집의 ‘여주인’을 구경하려는 행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불안해 하지 않았던 것이 판스워스의 패착이라 해야 하겠다. 자신에게 다가올 사건들을 예견하지 못한 것, 그것에 대비하지 못한 것, 너무 열려 있었던 것이 말이다. 존슨이나 데어 로에는 물론 셰어바르트나 벤야민은 알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불안이란 것이 단지 추상적인 것이 아님을, 그것은 한편으로 과도한 자기 방어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삶을 유지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것임을 ― 불안해 함으로써만 삶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을 말이다.

이를테면 “불안의 윤리” 같은 것을 생각해 본다. 타인의 불안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특히나 직접적인 위협으로부터 다소간 떨어진 삶을 사는 ― 예컨대 나는 소위 학벌과 학력을 가진 사람이자 상대적으로 안전한 학교라는 공간에서 주로 생활하는 사람이며 사회적으로 자국 출신의 비장애인 남성으로 인식되므로 이렇다 할 위협을 받지 않고서 살아간다 ― 이가 타인의 불안에 대해 무슨 말을 해도 좋을까? 나는 망설여진다. 벤야민의 테제를 긍정적으로 제시하기가 말이다.

#3 불안과 용기

그러니 우선 나의 불안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말했듯 내 삶에 외적인 불안 요소는 적다. 그럼에도 내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 내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문학 연구자로서, 그리고 활동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약간의 과장을 더하자면 스스로 가난해지는 것, 고민을 사서 하는 것, 분란을 찾아가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삶에서 풍요와 안정을 앗아 가고, 따라서 불안을 불러 온다. 게다가 이 불안은 이중적이다. 적어도 내가 지금처럼 살고자 하는 한, 나는 그런 삶을 불안해 하는 것에 대한 불안 ― 가난과 고민과 분란을 회피하게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또한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 이중의 불안을 대한다는 것은 불안을 기꺼이 껴안고 사는 것인 동시에 불안과 싸우는 것이다. 내 미래가 얼마나 불투명한지 알고 있으므로, 불안해 하지 않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삶의 방향을 틀지 않는 것은 불안을 껴안고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기꺼운 일만은 아니다. 이 불안을 해소하지 않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나는 이 불안과 싸워야 한다. 불안을 껴안되 불안에 잠식되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삶이 내게 요구하는 바다.

거창하게 적었지만 이것은 많은 이들이 삶을 견뎌내는 방식이다. 밤거리가 무섭지만 집에 틀어 박히지 않는 어떤 여성은, 해고가 두렵지만 노조에 가입하는 어떤 노동자는, 호모포비아들의 공격이 두렵지만 커밍아웃을 하는 어떤 성소수자는, 모두 이런 식으로 불안을 껴안고 불안에 맞서며 살아 간다.

흔히들 이것을 어떤 용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밤거리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사람은 겁에 질린 사람, 위험을 회피하는 사람, 비겁한 사람이 된다. 밤거리를 되찾는 것, 노동권을 요구하는 것, 커밍아웃하는 것, 이런 것들은 물론 용기 있는 행동이며 불안과는, 두려움과는 반대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활동가 마쯔는 “용기는 두려움을 통해서 가능해지는 감정”이라고 말한다.7 두려움의 국면이 삭제될 때, 우리는 무언가를 해 내는 ‘용기 있는’ 사람만을 주체로 인정하게 된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우리는 추모한다, 그리고 존재한다”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된 해시태그 운동 ― 그러니까,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존재한다는 선언을 토대로 진행된 한 운동을 언급하며 마쯔는 이렇게 쓴다.

추모를 통한 커밍아웃에서 드러나는 주요한 감정은 용기가 아니라 두려움이다. 이곳에서 두려움은 도저히 삭제될 수 없는 핵심적 요소가 된다. 죽음 앞에서, 죽음을 야기한 폭력을 예감하는 사람들의 커밍아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겁먹은 자들의 커밍아웃은 특정한 주체에게만 정치적 가능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상실과 고통에 괴로워하고 겁에 질린 모든 이들을 정치적 애도의 장으로 초대한다. 여기서 ‘우리’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되지 않고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고통에 공감하는 모든 사람에게 문을 열어 둔다.

불안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건을 마주할 수 있는 힘, 그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마쯔의 글을 읽고서 나는, 그것은 어쩌면 불안을 고백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르리라고 생각한다. 강해짐으로써 불안을 떨치는 것, 혹은 둔해짐으로써 불안을 무시하는 것, 용기는 그런 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불안을 고백함으로써, 두려움을 고백함으로써, 스스로가 얼마나 약한지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용기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4 불안으로 연대하기

불안한 자들의 연대, 겁 먹은 자들의 연대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이 있은 후의 일이다. 나는 “모두가 유족이다, 라는 말이 더 이상 비유가 아닌”이라는 제목의 일기를 썼다. “나는 너다. 너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기도 하다”라는 추모 포스트잇을 보고서였다. “유족”이라는 말은 묘하다. 그것은 유족이라 불리는 산 자들이 죽은 자와 공유하는 무언가를 표시한다. 흔히는 ‘피’지만 어찌보면 결국은 모두가 죽을 것이라는 ‘운명’이다. 스스로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이 말에는 그럼에도, 살아 가리라는 의지가 또한 담겨 있다.

이 말에 대해 처음 생각한 것은 세월호 사건이 있은 후였다. 한국에 살고 있었다는 점 외의 별다른 이유 없이 죽은 사람들을 보며, (적어도 내가 아는) 한국인 모두는 유족이 되었다. 그 죽음은 언제든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게 되었다. 세월호 사건 후에도 강남역 사건 후에도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살아 있음을 안도하거나, 죽음이 두려워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는 대신, 추모 집회에 나섰다. 현실을 바꾸자고 말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언제 찾아올지 모를 극단적인 사건에 대한 불안으로, 우리는 움직였다.

불안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그러기 위해 스스로로 통하는 문을 닫는 어떤 기제라면, 연대는 어쩌면 불안을 고백하는 데에서, 그럼으로써 작은 쪽문을 여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겠다. 불안으로 어딘가에 숨거나, 불안하지 않다고 거짓말을 하는 대신, 불안해 하는 이들끼리 함께 모이는 것, 그 불안을 나누었던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겠다. 실제적으로든 비유적으로든, 죽은 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길, 그리하여 삶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을, 어쩌면 불안을 고백하는 데에서 ― 스스로가 약함을 인정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막 읽기 시작한 (그러나 이 글을 쓰기 위해 덮어야만 했던) 『불확실한 삶』의 서문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이렇게 쓴다.

우리가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 타인들이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타인의 변덕에 의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공포와 비탄의 이유가 된다. 하지만 취약성과 상실의 경험이 곧장 군사적 폭력과 응징으로 이어져야만 하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른 길들이 있다. 우리가 보다 덜 폭력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 폭력의 순환을 끊는 데에 관심이 있다면, 전쟁을 외치는 것 외에 비탄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묻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중요하다. // 상처가 주는 통찰 하나는 저기 바깥에 내가 모르는, 내가 결코 알 수 없을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내 삶이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8

불안이란 결국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데에서, 다시 말해 내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서, 그러나 내가 타인에게서 영향 받지 않을 만큼 강하지는 않다는 데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안을 해소하려 드는 것, 타인을 통제함으로써 잠재적인 위협을 없애려 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의존적인, 모두가 불안한 존재로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를 생각하는 일일 것이다.

#5 불안하기 싫어서

불안을 고백한다는 것은 내게 있어, 결국은 불안하고 싶지 않다고, 이것을 견디기에 나는 약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내게 삶에 대한 어떤 불안이 연대와, 소위 ‘운동’과 이어지는 것은 그래서다. 나는 불안하고 싶지 않으므로,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을 바꾸고자 한다. 나 자신이 타인의 불안의 근원이 되는 것이 싫으므로, 나는 스스로를 바꾸고자 한다.

“시대에 몰입”하기 위하여 나는, 내가 몰입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시대를 필요로 한다. 내가 관찰할 수 있도록 내 앞에서 거리낌 없이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을, 내가 대화할 수 있도록 내가 말 걸 때 도망가지 않을 사람들을, 내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도록 내게 말 걸어 줄 사람들을,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겁먹게 하지 않는 세상을, 나는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나도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으므로 장애인 운동에 힘을 보태는 것, 내가 여성으로 보이는 날 나도 여성 혐오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페미니즘 운동에 힘을 보태는 것, 과는 조금 다르다. 이것들 역시 어떤 불안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불안을 미래의 것으로 유예하고 지금 자신의 자리를 단단하게 굳히는 일이라면, 반대로 지금의 불안을 고백함으로써 문을 연다는 것, 그것은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이 단절되어 있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 타인의 일과 나의 일을 딱 잘라 구분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시작은 아마도, 가난에 대한 기억이었다. 가난을 이유로 내일을, 다음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던 기억. 그런 불안을 안고 살고 싶지 않았다. 그 지점에서는 하나의 선택이 필요했다,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을 어떤 삶을 추구하는 것과 가난 자체와 싸우는 것. 전자는 불안을 억누르고 그 일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고 후자는 사람들과 함께 그 불안을 나눌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후자를 택했다.

또한 동시에, 타인에게 그런 불안을 안기고 싶지 않았다. (자본가는 아니라 해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살아 가는 소비자로서 내가 어떤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었고, (일단 페미니스트라고는 해도)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라는 지위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내가 어떤 여성/성소수자를 억압할 수 있었으며, 학벌주의 사회에서 내가 누군가를 짓밟고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활동가로서, 연구자로서, 온전히 도망칠 수는 없다고 해도 최대한 체제의 주변부에서 살고자 하는 것은 그래서다. 불안에 쫓겨 체제의 중심을 향하고 그래서 타인을 불안하게 하는 것, 그럼으로써 서로의 문을 닫는 것, 나는 그것이 싫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불안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종류의 불안을 택한 것, 자신을 열어둘 수 있고 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종류의 불안을 택한 것이다.

#6 나가며

불안하지 않을 위치를 쟁취하라고는 물론이고, 불안할 필요 없다고도, 불안을 떨치라고도 나는 말할 수 없다. 유리집에 살자고, 나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이 내가 아는 불안의 윤리다. 타인의 불안을 인정하는 것, 나의 기준에서 그것을 함부로 부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불안을 말하는 나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조심스럽게나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쳐버리지는 말자고, 적어도 볕이 드는 동안, 혹은 바람이 부는 동안, 이따금 창문을 열어두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들고양이들을, 비둘기들을 만나자고 말이다. 이것은 불안해 하는 것, 그래서 문을 닫는 것이 하찮고 나쁜 일이어서가 아니다. 내가 당신을 알고 싶으므로, 내가 당신의 영역에 들어가고 싶으므로, 그러니까 실은 나를 위해, 당신에게 건네는 하나의 부탁이다. 나의 부탁은, 불안할 때 불안하다고 말해 달라는 것, 무엇이 왜 불안한지를 내가 알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타인의 불안에 대해 이 이상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자 한다. 스스로의 틈을 조금 열어두고, 어디가 열려 있는지 알려주고, 그렇게 살고자 한다. 불안이라는 벽 뒤에 숨어 잠깐의 안정을 찾기보다는, 불안이라는 벽 앞에 나와서, 함께 불안한 이들을 찾아 연대하며, 그 힘으로 불안을 이겨내는 것 ― 불안을 견디는 것, 불안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 이 둘 모두의 의미에서 ― 을 나는 꿈꾼다.

“시대에 일말의 환상도 품지 않으면서 시대에 몰입하기”. 벤야민이 불안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벤야민을 인용한 이유는 이 문장에 있다. 나의 ― ‘우리의’라고 쓰는 것은 과한 일이 될 것 같다 ― 경험은 이런 것이다. 삶은 내게 이렇다 할 좋은 것을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삶은 늘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삶을 피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러나 나는 삶 속에서 마주치는 몇몇의 벗들을 사랑하므로, 삶에 뛰어들기로 하였다.

1나는 이것이 적절한 제목인지 의심스럽다.

2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하는 (예비) 연구자이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성과재생산포럼 등에 몸담고 있는 페미니스트 활동가. 주로 안전한 곳에서 글을 읽고 쓰며 산다는 점에서, 이 발표의 적임자는 아니다.

3이것은 프로이트가 규정하는 몇 가지 불안 중 하나에 해당한다. 미국정신분석학회 편, 이재훈 역, 『정신분석용어사전』, 한국심리치료연구소, 2002 참고.

4발터 벤야민 저, 김영옥·황현산 역,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p. 192, 『발터 벤야민 선집』 4, , 2010, pp. 177-250.

5같은 글, p. 190. 그는 여기서 “경험”과 “체험”을 대비시키고 있다. 전자가 “기억 속에 엄격히 고정되어 있는 개별적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는 산물이 아니라 종종 의식조차 되지 않는 자료들이 축적되어 하나로 합쳐지는 종합적 기억의 산물”(같은 글, p. 182)으로서 개인적 층위에서는 일생을 관통하는, 집단적 층위에서는 전통으로써 이어지는 지속성과 연관된다면, 후자는 의식의 층위에서 진행된 것, 인상들을 해체해 순간적으로 기록하는 것, “사건의 내용을 포기하는 대가로 의식 속에서 정확한 시간의 지점을 사건에 지정해주는 것”(같은 글, p. 192)과 관련된다.

6여기에는 모든 것을 분석적인 정보로 치환하는 신문의 보급이 큰 기여를 한다. 또한 문학 양식으로서는 ― 전통적인 이야기하기Erzaehlen와 대비되는 ― 소설 양식의 대두가 이러한 현상과 맥을 함께 한다. 이 단락과 다음의 두 단락은 발터 벤야민 저, 최성만 역, 「경험과 빈곤」, 『발터 벤야민 선집』 5, , 2008, pp. 169-180을 참조해 쓴 것이며, 마지막의 인용구는 p. 175의 것이다.

7마쯔, 「겁먹은 자들의 커밍아웃」, 『대학원신문』 324, 중앙대학교 신문사, 2015. 이하의 인용도 같은 곳.
(http://gspres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21173)

8Judith Butler, Precarious Life, London: Verso, 2004/2006, p. x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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