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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를 만나고 배가 아파졌다.

친구가 책을 낸다. 『MORI IN PROGRESS: 까마귀의 모음 1집』. 정확히는 책과 카세트 테이프 묶음이다. 독일에 체류한 한 달의 기록과 짧은 소설 하나를 담았다. 리뷰, 라고 썼지만 프리뷰라는 말이 더 어울릴까. 아직 나오지 않은 책을 미리 받아 읽고 책에 답하는 일기를 썼다. 이 글은 https://moriiapt.wordpress.com/에 공개되었다. 다른 포스트들을 통해, 책의 내용 일부를 미리 볼 수 있다.

 

 

 

리뷰를 위해 내가 받은 파일, 그러니까 내지內紙에는 저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으므로 일단 ‘모리’라고 부르기로 하자. 모리는 자신을 좋아하는, 그리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좋아하므로, 그리고 쌓여 있는 해야 할 일들은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 구인광고에 응했다. 리뷰를 써 줄 이가 필요하다고 했다. 리뷰는 세 줄이어도 좋다고 했다. 싸구려 영화 포스터에 종종 찍히는 “전율케 하는!”, “감동을 선사한다!” 같은 문장들을 몇 개 떠올렸지만 그런 글은 아니었다.

앞이 늘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뒤의 소설부터 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모리는 말했다. 차분했지만 늘어지지는 않았다. 덧붙일 말은 찾기 어려웠다. 소설부터 읽어야 하나,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이유 없는 일 ― 이를테면 버스 한 번으로 갈 수 있는 거리를 두 시간 동안 걷는다든가 ― 을 좋아하지만 이유 없는 일에 능하지는 못하다. 바쁜 와중에 이 책을 읽는 것도 그런 식이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 읽은 후에, 리뷰 대신 이 일기를 쓴다. 모리 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끝내 익숙해지지 못했다. 좋아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베를린을 향하는 출국 장면으로 시작한다. 모리는 타국에서 지내는 친구에게 가져다 줄 고추장을 조금은 성가셔 한다. 한 달을 베를린에 머물렀지만 그 고추장 통을 열었는지는 모르겠다. 고기나 빵, 커피, 그리고 술을 먹은 이야기들만이 이어진다. 베를린에서의 첫 끼는 해선탕면이었다고 했다. 마지막 끼니는 슈바이네브라텐이라는, 독일 음식이었던 모양이다. 전시장을 다닌 이야기, 메이데이 집회에 나갔던 이야기, 클럽에 갔던 이야기 ― 하고많은 이야기들 중에 왜 먹은 이야기만 기억나는 걸까.

독일에서의 한 달을, ‘여행객 아닌 척 하기’에 힘을 쏟으며 지낸 모양이다. 이제는 서울의 일상으로 돌아와 버린 모리가, 뒤늦게 ‘여행객인 척 하기’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럴싸한 여행담을 정리해 책으로 묶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에 시달리지 않는 척 ― 내가 알기로 모리는 그런 적이 없다, 그냥 왠지 그런 느낌이다 ― 능청스럽게도 책을 묶었다는 뜻이다. 일상 아닌 것을 일상으로서 살아내는 것, 그로써 일상을 비일상으로 돌리는 것, 또 모리 식으로 말해보자면 “너무 매력적이라서 또 빈정이 상하는군”. 괜히, 술 먹고 난동 부리던 모리를 떠올려 본다.

달리 무슨 말을 적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보통 글을 읽으면 혐오적인 지점이라든가 개연성 없음 같은 지점들을 비판하는 기록을 남기는데, 전자는 찾기 힘들었고 후자는 애초에 일기의 요건이 아니다. 잘 안 읽힌다고 투덜거리기라도 해보고 싶지만, 아직 남아 있는 오타라든가 내가 배운 것과 다른 독일어 한글 표기법이라든가가 다소 거슬렸음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혔다. 금세 읽었다. 무어라도 흠을 잡아 모리를 놀려 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배가 아프다.

완벽한 글이에요! 같은 말을 할 것은 아니다. 이유 없는 일에는 능하지 못하므로, 나는 읽고 생각하고 다시 쓰는 일에 능하지 못하다. 완벽한 글 ― 그런 것이 있다면 ― 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읽을 뿐이다. 그저 읽었을 뿐인데도 일기에 실린 몇 개의 문장과 몇 장이 사진이 기억나는 것을 보면, 그리고 뒤에 붙은 소설을 그래서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썩 나쁜 책은 아닌 모양이다.

썩 나쁜 책은 아닌 모양이다, 같은 모호한 문장이, 좋은 리뷰를 기다리고 있을 모리에게 작은 복수가 되면 좋겠다. 나는 배가 아프니까. 이 책이 품절되면, 내 배는 더 아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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